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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는 알파고, 그 바둑을 보는 사람
작성자 | 관리자1 작성일 | 2017-06-14 조회 | 5


한국사에서 바둑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건을 꼽으라면 역시 서기 475년에 벌어진 백제 서울 함락과 도림(道琳)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 백제의 임금이었던 개로왕이 도림이라는 사람과 바둑을 두다가 그 솜씨에 반해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 말을 따르다가 나랏일을 그르쳐서 결국 고구려에게 공격당해 패배했다는 이야기인데, 가끔 소설이나 TV극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보통 도림의 이야기를 극화하는 경우에는 도림의 집념이나 백제 개로왕의 독특한 성격, 백제 궁중의 복잡한 정황을 재밋거리로 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정작 도림의 바둑 솜씨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도대체 바둑을 어떻게 두었길래 몇 번의 게임으로 임금의 마음을 빼앗았는지,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바둑을 잘 두는 솜씨가 과연 얼마나 아름답고 절묘한 것인지, 나는 그것이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다. 도림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도림의 바둑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와 같고, 알프스를 넘는 장면을 뺀 나폴레옹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도림의 바둑 이야기가 이렇게 쪼그라든 이유는 결국 따져 보자면 도림이 바둑을 어떻게 두었는지 그 기록, 즉 기보가 지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보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당시 백제의 바둑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고, 도림이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기에 당시 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 기보를 보고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보를 볼 수 있었다면, 개로왕이 어떤 수에서 도림에게 감탄하고 어떤 수에서 도림의 두뇌에 존경심을 느꼈는지, 어떤 수를 보고 깊은 존경심마저 느껴서 그에게 나라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 우리도 같이 느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커제 9단과 알파고 간에 이루어진 대국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 대결이었다고 본다. 작년 이세돌 9단 대 알파고의 대결에선 컴퓨터 프로그램의 계산이 사람의 바둑 두는 실력을 넘어설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커제 9단의 대결은 이미 커제 9단의 패배를 예상한 상태에서 도대체 알파고가 어떤 기술과 어떤 재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그 내용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번 대결의 구경거리는 단순히 알파고가 바둑을 잘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였다.


실제로 커제 9단은 대결 뒤의 소감을 밝히며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나 자신을 바꾸는 중이다. 나는 나 자신만 바꾸면 되겠지만 딥마인드팀은 세상을 바꾸어놓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커제 9단의 이러한 감정이 1500년 전 도림과 바둑을 둔 개로왕의 감상과 닮은 점이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많은 바둑 전문가들이 알파고의 뛰어난 수에 감탄하고 있고, 대결 후 공개된 알파고와 알파고의 대결 기보 역시 흥미진진한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SF 작가로서 나는 이런 초점의 차이가 이제 인공지능의 계산 결과가 예술과 창작의 영역으로 꽤 많이 들어왔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기보 속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의 고민과 격정을 같이 불러일으키는 극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신문 지면의 손바닥 절반 정도 공간 속에 담기는 한 장의 기보에 많은 바둑팬들이 달라붙어 울고 웃는 것은 바로 그런 예술 작품과 같은 감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최고 수준의 기보를 쉬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영원히 계속해서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조금씩 설정을 조절한다면 더 다양한 성격의, 좀 더 재미에 초점을 맞춘 기보를 뽑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바둑 전문가들에게는 한동안 그 많은 기록 중에서 주목할 만한 묘수가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보고 감탄할 만한 수는 어떤 것인지 찾아내고 소개하는 것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다 앞으로 다양한 바둑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내는 기보의 숫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면, 이런 작업도 사람이 일일이 하기 힘들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결국 기보에서 어떤 장면이 묘수였는지, 어떤 장면이 감탄할 만한지 뽑아내는 작업 조차도 그런 용도로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통해 걸러내고 검색하는 형태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때가 올 것이다.


그런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때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을 인공지능이 할 뿐만 아니라 감상하고 평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바둑 천재 도림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백제 임금 개로왕의 역할까지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이러한 인공지능이 적용된 세상은 어떤 일을 잘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아름답고 재미있다는 것에 대한 관점 또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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